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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루체른 페스티벌의 ‘간판스타(스타 아티스트)’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가 한국의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주목을 받았다. 198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 시민권을 가진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그는 2006년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 음악계에 각인시켰고, 2016년 그래미상 수상에 이어 오푸스 클래식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올해는 루체른 페스티벌의 간판스타로 선정되어 네 차례 무대에 올랐다. 8월 24일 루체른 KKL에서 열린 듀오 리사이틀에서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호흡하며 때로는 자연스럽게 역할을 전환해 가던 하델리히와 조성진, 두 아티스트는 탁월한 실내악적 호흡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지난 8월 24일 루체른 페스티벌, 아우구스틴 하델리히와 조성진 듀오 리사이틀 무대. / 사진. Ⓒ Lucerne Festival/Priska Ketterer
"실내악은 중요한 삶의 배움터"
이번 리사이틀을 위해 하델리히가 선택한 프로그램은 브람스, 야나체크, 에이미 비치, 프로코피예프를 아우르며 뚜렷한 대비를 이루었다. 하델리히는 "실내악은 하나의 중요한 삶의 배움터"라고 말한 바 있다. 상대의 소리를 듣고, 거기에 응답하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우게 하기 때문이다. 이날 두 사람의 연주에서는 이러한 소통의 감각이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어느 한쪽이 주도하고 다른 한쪽이 반주하는 관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음악적 대화를 이어갔다. 때로는 한 사람이 프레이즈를 이끌고, 때로는 상대의 선율을 받쳐주며, 또 어느 순간에는 서로의 음악 속으로 스며들었다.
클라라 슈만이 사랑했던 ‘빗방울 선율’
브람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G장조 Op.78'에서 하델리히와 조성진은 유연하면서도 서정적인 해석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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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조성진은 매우 너그러운 파트너였다. 넓고 따뜻하며 때로는 오케스트라를 연상시키는 피아노의 음향이 바이올린을 감싸면서도 결코 앞에 나서지 않았다. 바이올린의 선율과 피아노의 저음부가 주고받는 대화 역시 매우 자연스럽고 유려했다.
1878년 여름 뵈르터제 호숫가에서 시작된 이 소나타에는 빗소리의 이미지와 깊은 기억의 정서가 흐른다. 마지막 악장에는 브람스가 클라우스 그로트의 시에 붙인 이른바 ‘비의 노래’의 선율이 등장한다. 브람스는 이 곡들을 클라라 슈만에게 선물했다. 빗방울을 연상시키는 모티브는 소나타의 첫머리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 전체의 의미가 음악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구성이다.
두 번째 악장에서 하델리히와 조성진은 거의 시간이 멈춘 듯한 부드럽고 섬세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어지는 세 번째 악장에서는 훨씬 풍부한 다이내믹의 변화가 펼쳐진다. 두 악기가 서로의 사운드 안으로 깊이 들어가며 융화했다. 이러한 상호 간의 경청이 만들어내는 음악적 호흡은 매우 강렬하게 다가왔다.
지난 8월 24일 루체른 페스티벌, 아우구스틴 하델리히와 조성진 듀오 리사이틀 무대. / 사진. Ⓒ Lucerne Festival/Priska Ketterer
몸짓과 언어, 그리고 긴박함
레오시 야나체크의 '바이올린 소나타'에 이르자 음악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음악은 아무런 전주도 없이 곧바로 격정적으로, 거의 열정에 사로잡힌 듯 시작된다. 모라비아 출신의 작곡가 야나체크는 일상의 언어가 지닌 억양과 리듬에서 인간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의 선율은 짧은 단편과 외침, 간결한 모티브로 이어지고, 춤의 리듬은 규칙적인 박자를 끊임없이 교란한다.
하델리히는 이 작품에 흐르는 긴장과 신경질적인 에너지를 섬세하게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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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알레그로에서 조성진의 피아노는 매우 날카롭고 강렬했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피아노 독주에서는 템포와 다이내믹의 변화가 의도적으로 과장되며 거의 희극적인 효과까지 만들어낸다. 세 번째 악장에서 이번에는 피아노가 음악을 이끄는 듯하고, 바이올린은 그 위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을 그려낸다. 두 악기의 대화는 어느 순간 서로 다른 감정의 얼굴을 보여주는 대립으로 변한다.
선율 감각
휴식 후 이어진 에이미 비치의 '로망스 Op.23'은 음악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 1893년, 작곡가가 아직 20대였을 때 쓰인 이 작품은 그녀가 지닌 뛰어난 선율 감각을 잘 보여준다. 표면상으로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차 넓고 풍부하며 깊은 선율로 확장해간다. 300곡이 넘는 작품을 남긴 에이미 비치는 당시 미국 여성 작곡가로서는 매우 특별한 음악적 행보를 이어가던 인물이다.
작품 첫머리에 흐르는 부드러운 주제는 클라라 슈만의 '로망스'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도 있다. 하델리히는 이 선율에 각별한 서정성을 부여했다. 그의 바이올린은 마치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목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강한 성악적 울림을 지닌다. 음악의 긴장이 고조되면 조성진의 피아노가 한층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 흐름을 이끈다. 두 사람은 마치 한 몸처럼 함께 호흡하며 음악을 이어가고, 깊은 여운을 남겼다.
지난 8월 24일 루체른 페스티벌, 아우구스틴 하델리히와 조성진 듀오 리사이틀 무대. / 사진. Ⓒ Lucerne Festival/Priska Ketterer
자유로움 속의 긴장과 유머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 D장조 Op.94a'에 이르러 리사이틀은 전혀 다른 에너지로 마무리된다. 제2차 세계대전 한가운데 쓰인 작품이지만, 음악에서 전쟁의 흔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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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유연하며 때로는 발랄한 작품의 분위기는 오히려 당시의 역사적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처음에는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해 작곡되었으나, 이후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요청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버전으로 편곡되었다.
하델리히와 조성진 연주의 키워드는 두 사람이 끊임없이 역할을 바꾼다는 .이다. 어느 순간에는 피아노가 주도하고, 또 다른 순간에는 바이올린이 음악의 방향을 이끈다. 이러한 역할의 전환은 두 사람의 대화에 긴장감을 더하는 동시에 유희적 성격을 부여한다. 고난도의 패시지는 놀라운 정확성으로 처리하면서도 결코 경직되지 않는다. 특히 두 번째 악장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고 현란하지만, 두 연주자가 마치 친근한 경쟁을 벌이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재치와 유머가 더해진다.
이러한 자유로움은 오히려 매우 치밀한 연주 준비에서 비롯된 경지에 가깝다. 이는 특히 조성진의 성향과도 잘 맞닿아 있다. 두 아티스트가 지닌 고도의 기교는 상대방의 움직임과 반응에 따라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그때그때 새로운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음악적 수단이다. 때로는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서정성이 라벨의 작품 세계에서 감지되는 블루스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 8월 24일 루체른 페스티벌, 아우구스틴 하델리히와 조성진 듀오 리사이틀 무대. / 사진. Ⓒ Lucerne Festival/Priska Ketterer
달콤한 선물
두 아티스트의 음악에 단번에 매료된 루체른의 관객은 기립박수로 뜨거운 환호를 보냈고, 이에 대한 하델리히와 조성진은 깜짝 선물을 선사했다. 무대로 다시 나온 그들은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았다. 네 손으로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 中 요정의 정원'을 연주하던 순간은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과도 같이 다가왔고, 두 사람의 자연스럽고 따뜻한 음악적 교감은 객석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서로 다른 두 음악적 개성을 지닌 아우구스틴 하델리히와 조성진. 이들은 루체른에서 살아 숨 쉬고, 자유롭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실내악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루체른(스위스)=박마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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