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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누린인사 작성일26-09-28 13:23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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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훈 목사가 최근 경기도 안산 시냇가에심은교회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중소형 교회 부교역자로 17년을 보낸 윤지훈 목사는 어느 날 휴대전화 연락처를 훑어보다 멈칫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의 번호가 없었다. 에어컨 수리 기사 정도가 전부였다. 윤 목사는 “이대로 가다가는 세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목회자가 될 것 같아 두려웠다”고 말했다. 2018년 그는 경기도 안산의 문 닫은 호프집 자리에 카페 ‘이룸’을 열었다. 교회 간판을 내걸기보다 카페 사장으로 동네에 첫인사를 건넸다. 2년여 뒤 그 카페에서 5~6명이 첫 예배를 드렸다. 이렇게 시작한 시냇가에심은교회는 2022년 김희범 목사가 이끌던 움직이는교회와 하나가 돼 공동목회 4년째를 맞았다. 주일마다 130여명이 모이고, 아이들을 뺀 성도들 평균 나이는 31.5세다. 윤 목사는 최근 경기도 안산 교회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마음으로 동네 이웃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 목사는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다. 20대에 전라도의 한 시골 마을에 교회를 세운 부친은 그 시절을 “북만 쳐도 아이들이 모이던 시대”로 기억한다. 부흥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릴게임손오공 2000년대 초 부친이 충남 천안에서 다시 시작한 개척은 지하 예배당을 연 지 석 달 만에 2000만원 넘는 빚을 졌고 1년 반 만에 문을 닫았다. 가족은 흩어져 살았고 윤 목사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군에 입대했다. 그는 “예배당부터 마련해 놓고 사람을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이제 성도들을 만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군 복무를 하던 그는 부친에게 전화를 걸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냐”고 물었다. 부친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걸 내가 어떻게 부정하냐”고 답했다. 윤 목사는 “사실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며 “개척교회를 하는 아버지의 어려움을 다 봤는데, 그런데도 아버지는 계속 목회의 길을 걸어갔다”며 그게 감사하다고 했다. 윤 목사는 17년간 교단을 가리지 않고 중소형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일했다. 그는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교회 안과 목회자 한 사람에게 모였다”고 돌아봤다. 형편을 넘어서는 건축을 추진하던 한 교회에서는 집을 담보로 헌금한 교인이 20대 전도사였던 그에게 “이게 맞느냐”고 물었다. 윤 목사는 “성도의 삶부터 살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고 말했다. 교회 밖을 향한 질문은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됐다. 손오공게임다운로드 그는 참사 당시 안산의 한 교회에서 사역하며 제자로 두었던 단원고 학생의 시신을 팽목항에서 유가족과 함께 수습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끝까지 함께하지 않는 교회에 상처를 받은 유가족이 많았다고 전했다. 윤 목사는 “유가족은 함께 울어달라고 했는데, 교회도 그 큰 슬픔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며 “그때 재난 앞에서 교회가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카페 ‘이룸’은 석 달간 커피를 배워 연 가게였다. 윤 목사는 “카페 교회가 아니라 커피에 공동체를 더한 곳이었다”며 “동네 어른들이 상처 입은 이웃을 품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며 이게 교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동네 엄마들이 잠시 볼일을 보는 동안 아이들을 봐 줬고, 옆 경쟁 카페 앞 담배꽁초까지 치웠다. 그렇게 쌓인 관계는 뜻밖의 순간에 빛났다. 2020년 초 신천지 사태 때 이룸이 신천지와 관련 있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자 단골 엄마들이 “그 사장님이 그럴 리 없다”며 나섰다. 윤 목사는 “눈물이 났다. 그동안의 삶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해 4월 카페에서 첫 예배를 드렸고 반년 만에 20명 가까이 모였다. 그중 3분의 1은 교회에 다니지 않던 이들이었다. 예배 형식은 카페 공간에 따라 모인 사람들에 맞춰 새로 구성했다. 릴게임추천 테이블에 커피와 간식, 성경을 두고 둘러앉았고, 예배 전 20분은 한 주간의 삶을 서로 나누는 시간으로 뒀다. 함께 교회를 꾸리는 김희범 목사는 윤 목사가 개척 모델을 찾던 2017년에 만난 안산의 청년 사회활동가다. 공간과 교육, 후원을 엮어 청소년들을 만나던 그의 방식은 카페 이룸의 밑그림이 됐다. 이후 신학을 공부해 움직이는교회를 세운 김 목사와 윤 목사는 2022년 봄 동네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두 교회를 합쳤다. 윤 목사는 “저는 교회에서 사회로 나아갔고 김 목사는 사회에서 교회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윤 목사는 30~40대 가정 그룹 ‘윗마을’을, 김 목사는 청년 공동체 ‘아랫마을’과 교회 운영을 주로 맡는다. 공동목회는 사실 쉽지 않은 길이다. 두 목회자의 뜻이 갈리면 교회도 나뉘기 쉽다. 그럼에도 윤 목사는 “서로가 서로를 깨우는 종이자 의지하는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간판에는 교회 이름 대신 ‘문화공간 시심’을 달았고 교회 강단에 흔히 보이던 십자가도 두지 않았다. 재정은 처음부터 공개했고, 교인들이 스스로 헌금을 늘려 교회는 자립했다. 윤 목사의 부친은 지금도 강원도 홍천에서 작은 교회를 개척해 목회하고 있다. 윤 목사는 “카페에서 동네 사람들과 부대끼던 2년 반이 참 좋았다”며 “교회가 더 자라더라도 언젠가 다시 동네에 작은 카페를 열어 커피를 내리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와 윤 목사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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