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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명진2리. 마을 앞에는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생활하는 임시조립주택 19채가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임시주택 안은 성인 몇 명만 함께 있어도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비좁아 보였다.
명절이면 자녀와 친척들이 찾아와 북적여야 할 농촌 마을이지만 올해도 임시주택을 벗어나지 못한 이재민들은 가족을 맞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임시주택 사이에 놓인 평상에서 만난 이재연(78·여)씨는 임시주택에서 맞는 두 번째 추석이 달갑지만은 않은 듯했다.
"늙은이들만 있어서 추석 장을 보기도 힘들어요. 시장에서 물건을 사 와도 놓을 공간이 부족해요. 이리저리 자꾸 옮기다 보면 볼일을 다 봐요. 탄 것은 탄 것이고, 집부터 빨리 지었으면 좋겠어요."
이씨의 남편 이호창(80)씨도 추석 장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거들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새집을 짓는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지난 3월 새집 공사가 시작됐고 5월 말이면 입주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공사는 중단된 상태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건축비가 늘면서 차일피일 시간만 흘렀다.
산불이 발생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이들 노부부에게 당시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다.
"산불에 집이 다 탔을 때는 하루에도 열 번은 더 울었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울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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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잘못 때문에 모든게 다 타버렸는데 많이 분하기도 했지요.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요."
예년 같으면 자녀들과 함께 차례를 지냈겠지만 올해도 여의치 않다.
"추석이니 차례를 지내는 흉내라도 내야 하는데 산에 있는 묘에 가서 절하고 바로 내려와야죠. 임시주택에서는 공간이 좁아 차례상을 차릴 수도 없어요. 벌써 2년이 다 돼가요. 이러다가 3년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집을 짓는 속도가 너무 더뎌요."
명진2리에서는 지난해 3월 산불로 가옥 19채가 불에 탔다. 의성군 안평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발생 3일 만에 마을 앞산을 덮쳤고, 의성군 안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은 마을 뒷산까지 휩쓸었다.
산불 직후 마을 앞에는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주택 19채가 들어섰다. 이 가운데 7가구는 친척집이나 병원 등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금은 12가구가 임시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미화(62·여)씨는 이번 추석에 자녀들을 부산 외갓집으로 보내고 자신도 친정으로 갈 예정이다. 임시주택이 비좁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씨에게는 산불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또 다른 상처가 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산불 피해가 .。 잊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젠 추석이 와도 온정의 손길이 다 끊겼네요. 우리의 상처는 작년 3월 25일 그날에 머물러 있는데 모두 잊혀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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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를 입은 당사자들만 빼고"
김씨는 서울에서 살다가 지난 2024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명진2리로 귀촌했다. 시골이 좋아서 아파트 생활을 접고 이곳에 새터전을 마련했다. 마당에는 잔디도 깔았다. 참으로 행복했던 귀촌 생활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1년 만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올 때까지 찍었던 사진 앨범은 물론 각종 상장과 메달도 모두 불탔다. 남편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요리대회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가해 받은 상장과 사진도 잿더미가 됐다.
"수십년간 쌓아온 소중했던 추억이 하나도 남은 게 없어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김씨는 그래도 이곳에 정착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친구 이호창씨를 만나기 위해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서 부인과 함께 왔다는 장경일(80)씨도 지난해 3월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로 집이 전소됐다.
"일부 주민들이 '보상 많이 받았잖아요'라고 툭 던지는 말에 많은 상처를 받아요. 그 보상금으로는 새집을 짓기에 한참 부족해요. 숟가락 하나부터 세간살이까지 모두 새로 사야 해요. 산불 피해자들만 힘들죠."
그는 산불 피해자들에게 주변에서 무심코 던지는 말이 또 다른 상처가 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호운(66) 전 명진2리 이장도 산불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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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당시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이웃집에 붙은 불을 끄느라 자신의 집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결국 그의 집도 모두 불에 탔다.
"새집 짓는 공사가 자꾸 늦어지니 마을이 뒤숭숭하네요. 한마디로 답답합니다."
이 전 이장은 새집 공사가 늦어지면서 마을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다고 했다. 당초 올여름 입주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추석을 맞아 외지에 있는 자녀들이 찾아오는 것도 걱정이다.
"예전에는 추석 때면 아이들이 와서 2~3일씩 있다가 갔어요. 이제는 하룻밤도 자지 않고 바로 갑니다. 임시주택에 아이들이 오면 비좁은 공간에 끼어서 자야 합니다."
이 전 이장은 하루빨리 주민들이 다시 한곳에 모여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북에서는 지난해 3월 발생한 의성 산불로 의성군 13개 읍면, 안동시 7개 면, 청송군 5개 읍면, 영양군 2개 면, 영덕군 5개 읍면 등 5개 시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
공·사유림 피해 면적은 9만9417㏊에 달한다. 피해액은 1조659억원으로 집계됐다. 인명피해는 175명으로 사망 26명, 중상 32명, 부상 117명이다.
농작물 2003㏊, 시설원예 1480동, 농기계 1만7265대, 문화유산 31개소도 피해를 입었다. 이재민은 3323세대 5499명에 달한다.
이들에게 지원된 임시조립주택은 모두 2624동(4354명)이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퇴거하지 못한 채 임시조립주택에 남아 있는 이재민은 3222명(1976동)이다. 안동에서는 964명이 임시조립주택 597동에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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